<2018년 장려상 수상작 (에세이)>
‘아이지킴콜 112’이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의 동아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는 나와 같은 학대받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동 학대’. 나에게는 가장 뼈아픈 단어다.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심장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폭군인 아버지에게 맞고 살았다. 뿐만 아니다. 특별한 벌이가 없던 아버지는 집 근처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를 툭하면 손과 발, 몽둥이로 때리곤 했다.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 술을 사먹으면서도 “돈 번다고 유세 떠느냐”며 폭력을 일삼았다.
어느 날엔가는 “삐쩍 마른 어머니가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며 형이 아버지를 향해 소리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버지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지 형과 나를 묶어놓고 대든다는 이유로 마구 때렸다. 술 취한 정도가 심한 날에는 어머니와 나, 형 모두가 다락방에 숨어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기다릴 만큼 아버지는 무서운 대상이었다. 숨어 있는 동안 형과 어머니가 입술을 파르르 떨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입을 틀어막은 채 숨죽이고 있으면 어느새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곤 했다. 어린 마음에 속으로 생각했다. ‘저 인간은 분명 내 친아버지가 아닐 거라고. 어머니가 알려주지 않은 출생의 비밀이 분명 있을 거라고.’ 그 사람이 내 친아버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다. 어머니가 형과 나를 데리고 먼 곳으로 도망이라도 쳐줬으면 좋으련만 바보 같은 우리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고통을 다 참고 살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지 않은 날에도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싫었다. 이유 없이 책잡힐까 싶어 아버지의 시선이 닿는 곳을 피해 다녔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그 당시 국민학교 저학년 때 같은 반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할머니와 둘이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바보야. 아빠가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퍼붓듯 쏟아냈다. 그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내 가슴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좋았던 추억이 거의 없다. 그저 빨리 커서 어머니, 형과 함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형과 나는 본가를 벗어나 살고 있다. 바보 같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그 모진 세월을 함께 보내며 속이 다 썩어 문드러졌는지 환갑상도 받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누구 덕분에 이렇게 사느냐’고 큰소리치는 아버지가 꼴 보기 싫어 본가 주변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한 번 늙어보라지. 똑같이 돌려주겠어’라고 다짐했던 형과 나는 무관심과 무시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풀고 있다.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천안에 올라가 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내 앞자리에는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귀엽게 생긴 꼬마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이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연신 소리 높여 꾸짖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짝~하는 소리가 나면서 아이의 얼굴이 옆으로 확 돌아가 버렸다. 따귀를 세게 올려붙였던 것이다.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였다. 순간 버스 안은 정적이 흘렀지만, 아주머니만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는지 계속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를 본 아이는 입술이 퍼렇게 질리기 시작했고, 엄마와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만 떨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상황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아이엄마의 언성이 높아짐과 동시에 또다시 짝~ 하는 소리가 버스 안에 울려 퍼졌다. 연신 아이의 따귀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울컥하고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에게 이유 없이 맞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던 것일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마치 공기 없는 곳에 갇힌 것처럼 호흡곤란이 왔다. 셔츠의 단추 두 어 개를 풀고 나서야 겨우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통상적인 가정교육이라고 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어찌되었든 엄마가 자기 아이를 교육시키고 있는 것인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기 힘들었다. 앞쪽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허허. 애 엄마라는 사람이 애를 저렇게 때리나?”하며 훈수를 둘 뿐이었다. 우리 모두 제3자이기 때문에 쉽사리 개입 했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참고 있자니 부글부글 속이 끓어올랐다. 아이의 엄마가 기름을 붓듯 아이의 팔을 꼬집고 있었다.
“아주머니. 좀 적당히 하세요. 애가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뭘 잘못한지는 몰라도 좀 심하신 것 같네요.”
“아니, 내가 내 애 교육시키는데 당신이 뭔데 참견을 해요? 우리 애 알아요? 그냥 가던 길이나 조용히 갈 것이지…. 잘못했으니까 혼나는 건데 뭘 참견을 하고 그래요.”
“혼낼 거면 버스에서 내려서 정당하게 혼내세요. 보아하니 큰 잘못도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 많은 버스에서 애 따귀를 때리지를 않나. 이런 식으로 교육을 시키는 게 애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들 시선 때문에 아이가 더 수치스러울 거라고는 생각 안 하십니까?”
안하무인격인 아주머니 앞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세게 나왔다. 하지만 모른 척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때 당시 누군가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든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막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적어도 힘없던 어머니만이라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막아주었더라면 내 유년시절이 그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 즉시 핸드폰을 꺼내 ‘아이지킴콜 112’를 눌렀다. 예전에 기사를 통해 ‘아이지킴콜 112’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 무언가에 이끌리듯 핸드폰에 관련 어플을 깔아놓았던 것이다.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어플을 현실에서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플로 들어가 아주머니에게 화면을 들이밀었다.
“아주머니. 이거 보이세요? 똑바로 보세요.”
“아니, 갈 길 가라니까 왜 자꾸 참견이에요? 아니 대체 그게 뭔데?”
“아주머니 계속 그러시면 저 당장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어요. 신고하는 게 힘든 것도 아니고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바로 신고 됩니다. 신고하면 경찰이랑 학대전문가가 여기까지 달려 올 거고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뭐요? 당신이 뭔데 지금 나를 신고하겠다는 거예요? 아니 애 쫌 때린 것 갖고 학대라니. 애 안 키워 봤어요? 애 키우다 보면 다 있는 일이지. 참나.”
“학대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그 분들이 와서 판단할겁니다. 저는 이 어플만 이용하면 제 신분을 밝히지 않고도 아주머니 신고할 수 있어요. 신고하고 저는 아주머니 말대로 그냥 제 갈길 가면 그만입니다. 최악의 경우 아동학대가 밝혀지면 아주머니는 처벌받을 수도 있고요. 아이 생각한다면 그만 하시죠.”
내 말을 듣고서야 아주머니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표정이면서도 혹시나 내가 신고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울지 말라며 아이를 몇 번 타이르더니 조용히 버스에서 내리면서 일이 일단락됐다.
그날의 일을 생각하니 용기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무엇보다 내 용기에 뒷받침에 되어준 ‘아이지킴콜 112’ 어플을 진작에 깔아놓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핸드폰 속에는 든든한 아동 지킴이가 함께 하고 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될 경우 어플로 들어가면 간단한 체크리스트 작성 후 바로 신고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여 조사하고, 사례에 따라 피해 아동과 학대 행위자에 대한 응급조치 후 격리 등의 조치를 법에 따라 결정하여 시행한다. ‘아이지킴콜 112’이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의 동아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는 나와 같은 학대받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 핸드폰 속 든든한 아동 지킴이
수상자 : 김민진
201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