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시론]사법부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한심하다 |
기사링크 |
언론사 |
등록일 |
201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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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보도일 |
가슴 답답한 판결이었다. 2월 아버지의 이성교제를 반대하며 가출했다는 이유로 친딸을 목검으로 때려 숨지게 한 30대 아버지에게 법원이 6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최근 문제가 된 아동학대와 달리 딸이 지속적으로 학대받아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니다” 라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재판부가 바라본 ‘아동학대 기준’은 무엇이며 ‘지속적’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또 ‘상해치사죄’ 판결은 적절한 결과이며 형량 또한 적당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현행 아동복지법 제3조(정의)에는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제17조 제3호(금지행위)에는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는 학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아버지의 목검매질은 아동 신체에 손상을 주는 명백한 학대행위다. 거기에 두 차례 아이 가출이 있었다는 의미는 최소 두 차례 이상 아이가 심하게 맞았다는 것일 텐데, 얼마나 더 지속해야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는 것’으로 판결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재판부는 ‘목검매질’이 딸의 비행에 대한 설득작업의 일환이며 1시간 30분이나 폭행이 이뤄졌음에도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라며 딸을 살해할 의사가 없다는 아버지의 주장을 인정했다.
어떤 부모도 아이를 죽이고자 때리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1시간 30분 정도를 주먹으로 머리와 가슴 등을 마구 폭행했을 뿐 아니라 목검으로 종아리, 엉덩이 등을 30여 차례나 때렸다. 이쯤 되면 아버지 자신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너 오늘 열 받게 한다. 제삿날인줄 알아’라며 분노를 이기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왜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궁금하다. 그 뿐 아니라 이 아버지는 “자살이다” “딸이 사고로 사망했다”라고 주장하며 범행을 은닉하고 아이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려는 의도까지 보였다. 반성의 기미가 없고 죄질도 나빠 보인다.
부검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점을 볼 때 재판부는 애초에 아동학대 사망에 민감성이 없었고 학대범주를 아주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버지의 형량이 6년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는 아동 성폭력에는 최대 13년 이상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되도록 했다. 그러나 9월 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아동학대범죄처벌법’을 보면 아동학대 중상해죄를 가중해도 4~7년, 아동학대치사죄를 가중해도 6~9년이다. 성폭력과 아동학대의 두 법 사이의 불공평함은 더 이상 지적할 필요가 없다. 양형기준은 재판부 실무의 변명기준선이 돼서는 안된다. 인간존엄의 권익 차원에서 양형기준이 제시됨과 동시에 명확성, 공평성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이번 판결은 법집행자의 아동학대에 대한 낮은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화여대 노충래·정익중 교수팀의 법집행 담당자의 아동학대 인식 연구(2012)에서도 드러났듯 일반인보다도 법집행자가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도가 낮았다. 이는 법집행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아동학대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실제 아동학대를 다루는 경ㆍ검찰, 재판부 등의 아동학대 및 아동권리에 대한 이해와 민감성을 개선할 수 있는 교육 등이 정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양형기준만 높이는 것이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나 양형기준의 강화는 국민에게 아동학대가 범죄이고 엄중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자신이 양육하고 있는 손쉬운 대상,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직계비속(直系卑屬)을 학대하고 사망케 할 땐 더욱 가중 처벌돼야 한다.
이젠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매질은 단순히 훈육이라 변명하지만 그런 매질은 학대로 이어지고, 학대는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죽게 할 의도 없이 매질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존재이다. ‘매질의 시작은 학대’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본 기고는 한국일보 7/10일자에 게재된 시론입니다. (원 링크 보러가기)http://www.hankookilbo.com/v/89546433e5b24f3ba5f735eae39a4b3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