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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호(가명)는 8살이었던 2013년 봄부터 가을까지 금요일마다 새아빠에게 숙제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새아빠는 회초리로 지호의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때렸다. 매주 토요일에는 한자시험을 보고 틀린 만큼 매를 맞아야 했다. 회초리를 피하는 지호에게 “남자답게 맞아, 인마” 하며 머리를 밀치기도 했다. 이때 지호는 책상 모서리에 오른쪽 눈 아래 부위를 찧어 멍이 들었다. 집에 늦게 들어온 날도 회초리로 발바닥을 맞았다. 차에 구토를 했다고 걷어차이기도 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아동학대로 보고 새아빠를 재판에 넘겼다.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숙제검사나 한자시험 결과를 놓고 회초리를 든 행위는 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닌 이유로는 회초리로 때린 사실이 없는 점에 비춰보면 지호를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다. 지호를 걷어차고 멍이 들게 한 것은 아동학대로 인정됐다. 몸에 손상을 주는 행위만 신체적 학대로 규정했던 구 아동복지법이 적용된 결과였다. 검찰은 “숙제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건 훈육이 될 수 없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지난 1월 항소를 기각했다.
#2. 김모씨는 2015년 별거 중인 아내와 12살 아들이 사는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라고 소란을 피우자 아내가 문을 열어줬고 부부는 곧 아이 양육문제로 언성을 높이며 다퉜다. 지켜보던 아들이 아빠에게 “빨리 나가라” “닥치고 꺼져”라고 쏘아붙였다. 김씨는 아들의 왼뺨을 때렸고 1m 길이의 청소도구로 허벅지도 때렸다.
김씨 역시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욕설과 반말을 한 점과 자신에 대한 욕설에 화가 난 피고인이 피해자를 훈계할 의도로 체벌한 점을 고려했을 때 학대의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공부를 시키기 위해 든 회초리는 학대가 아닐까. 아이가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고 뺨을 때린 건 훈육의 연장선일까. 두 판결은 재판부 내에서조차 가정 내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분석된다. 훈육 목적이 있었는지, 수단이 정당했는지 정도가 경계를 가르는 열쇠로 지목되지만 이마저도 재판부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변호사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결국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의 가치관이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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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