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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세 여중생 동거 판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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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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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일

대법원이 자신보다 27세 어린 여성을 여중생 시절부터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모(45)씨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소녀는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문자 메시지를 근거로 “사랑했던 사이로 보인다” 며 1심이 징역 12년, 2심이 9년을 선고한 것을 깨고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소녀가 여중생이던 2011년 남성은 40대였으며, 아들과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여중생에게 연예기획사 대표라며 접근해 유혹한 뒤 성관계를 맺고 임신시켰다. 이후 소녀는 가출해 조씨 집에서 지냈고 출산 직후 빠져 나와 조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대법원 판결은 여중생이 성적 자기결정권, 즉 스스로 여중생이 이런 행동을 결정한 것이라는 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나이는 13세 이상이기 때문에 여중생이 남성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와 메일 등을 볼 때 위력이나 위계로 인해 억지로 성관계를 한 것이 아니므로 조씨는 무죄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정서로 볼 때 15세 여중생의 성적 자기결정이 과연 자의적이며 이러한 결정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경우 자의적 성관계 승낙연령은 17세로, 17세 미만 아동과의 성관계는 합의와 무관하게 처벌한다. 영국의 강간 처벌기준을 보면 13세 이상 16세 이하 아동과 성관계를 맺으면 징역 8~13년 형을 내리도록 돼 있으며 미성년자에 대한 의제강간이나 일부 동의라는 말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를 ‘Age of consent’라고 하는데, 동의ㆍ승낙할 수 없는 나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나라의 법 중 하나로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이 19세이고, 아동복지법에서 보호자의 보호를 받아야 되는 연령인 아동을 ‘18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연령이 13세 이상이라는 것은 너무 어린 나이다. 성인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동인 15세 여중생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준다는 것은 국내 정서에 맞지 않고 다른 법이나 외국의 법에 비교했을 때 납득하기 힘들다.

흔히 일어나는 미성년자 성추행이나 강간 사건에서 연예인 캐스팅을 미끼로 범죄자가 13세 이상 미성년자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사리분별이 명확하지 않고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있는 어린 나이에 이런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도 연예인 기획사 소속인 조씨가 여중생을 가출시키고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은 연예인이라는 미끼였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에서 13세 이상의 강간 사건에서는 위계나 위력, 대가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데 이런 유혹을 대가로 보지 않은 대법원 판결은 심히 안타깝다. 이번 사건에서도 여중생이 중년 남성에게 관심을 표현한 건 연예인 캐스팅이라는 미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유혹도 미성년자를 약취하고 유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판결로 인해 사후 또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음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아이들을 성학대에서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이번 판결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 해당 판례가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아동의 권익을 지킬 수 있도록 성적 자기결정 연령을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연예인 캐스팅 등을 미끼로 미성년자를 약취, 유인하는 것에 대해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관련 법의 개정과 제도 정비가 필수적이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중한 판결을 기대한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

 

 

 

* 본 기고는 2014.11.27일자로 한국일보에 실린 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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